어느 날, 지하철역을 지나가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휠체어를 탄 한 사람을 수십 명의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 역사 안과 지하철 안에서는 “불법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대체 어떤 시위를 하길래 이런 방송까지 나오는 걸까?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단지 경찰들에게 포위된 채 무언가를 외치는 한 사람이었다. 그의 외침은 경찰들의 고성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직원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찍지 마세요.” “기자가 아니면 가세요.” 위화감으로 가득 찬 플랫폼 위에서 시민들은 지시에 따라 발길을 돌렸고, 나도 결국 카메라를 내렸다.

그때를 떠올리면 후회가 된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결국 할 수 있었던 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그런데도 가끔 지하철 방송에서 ‘불법 시위’, ‘특정 장애인 단체 시위’라는 말이 들릴 때면 그날이 떠올랐다. 저 사람들은 또 경찰들에게 둘러싸이고 있을까? 또 폭력을 당하고 있을까?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걸까?

그러다 ‘남태령 대첩’을 통해 배웠다. 연대하고 싶다면, 그냥 가면 된다는 것을. 전장연의 선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24일에 다이인이 열린다고 해서 찾아갔다. 시민들이 많이 모여서 퇴거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이 충격적이었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던 걸까? 그리고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도 이만큼의 중무장과 인력을 동원했을까?

나는 한 달 평균 10만 원 정도의 교통비를 지출하는 승객이다. 취객이나 난동을 피우는 사람을 신고한 적도 있지만, 그럴 때 경찰이 이렇게 많이 온 적은 없었다. 전장연의 시위가 정말 그보다 더 위험한가? 그런 질문을 품은 채, 나는 아침마다 혜화역으로 향했다. 솔직히 힘들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으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일어났다. 처음엔 “네가 좋아하는 연예인 보러 가는 거면 일어날 거잖아”라는 생각이었고, 그다음엔 다시 잠들려 해도 사람들이 끌려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에게 그곳은 12월 3일의 국회였고, 12월 22일의 남태령이었다.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의 본능이었다.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가 끌려가면, 억울해서라도 나가게 된다. 사람이 바닥에 내던져지고, 질질 끌려가는 걸 보면,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막으러 가게 된다. 굳이 설명할 단어를 찾자면 ‘인류애적 사랑’ 정도일 것이고, 나는 이것을 사람이라 정의한다.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렇기에 연대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니까, 사람이 사람답게 일해야 하니까, 사람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야 하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니까, 사람이 온전하게 그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니까,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안 되니까.

나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믿는다. 언젠가는 혜화경찰들이 우리를 지켜줄 날이 올 것이다. 혜화역장이 사과할 날이 올 것이다. 저상 고속버스를 타고 전장연 동지들과 함께 거제에 갈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며, “그때는 그랬지”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그때까지, 끝까지 함께. 투쟁!

내란수괴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결코 올 수 없어요. 전장연은 매주 토요일 윤석열 파면·즉각 퇴진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며, 반민주·반헌법·장애인권리약탈자 윤석열의 탄핵을 촉구해 왔어요. 1월 2일에도 윤석열 탄핵을 투쟁 목표로 삼아, 대한민국의 진짜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안국역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이고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권리약탈자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중증장애인 해고 노동자 400명의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도 이어 갔어요. 💪 많은 시민분들이 전장연의 투쟁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든든했어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선포한 1월 2일은,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며 장애인권리를 위해 싸워온 장애인활동가 우동민 열사의 기일이기도 했어요. 🕊️ 그는 2010년 MB 가짜복지 규탄 투쟁에 참여해, 한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인권위원회 7층 인권상담센터에서 검거 농성을 벌였지만 인권위원회는 혹한의 12월에 난방을 끊고, 식사 반입마저 막았어요. 결국 그는 12월 6일 응급실로 실려 갔고, 1월 2일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어요. 2020년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그의 동판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되었죠.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그렇게 갑시다.” 우동민 열사의 이 말을 기억하며, 전장연은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함께 싸워나갈 거예요.✊🔥

2002년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고, 2015년에는 2022년까지 ‘1역 1동선’ 엘리베이터 설치,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을 약속했어요. 하지만 신설동역(2호선), 까치산역(5호선), 고속터미널역(7호선)에는 여전히 1역 1동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고, 장애인은 위험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다른 역까지 돌아가야만 해요. 저상버스 도입률 역시 2022년 62.5%, 2023년 66.7%, 2024년 71.1%로, 2025년까지 100% 도입은커녕 목표에 한참 못 미치고 있어요.

이제는 누구도 장애인 이동권을 반대하지 않고, 모두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동권을 보장하기는커녕, 장애인과 시민을 이간질하며 혐오 정치를 펼치고 있죠. 서울교통공사를 앞세워 매일 아침 활동가와 시민을 폭력적으로 강제 퇴거시키고, 9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민사소송까지 걸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탄압하고.😠 그래서, 전장연은 다시 포체투지를 시작했습니다. ‘지하철 포체투지(匍體投地)’는 오체투지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 몸을 기어가며 저항하는 시민불복종 행동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 없음’으로 규정되는 장애인의 몸을 드러내며, 진짜 민주주의를 외쳤어요.

12차 다이인(die-in) 행동 후, 전장연은 동덕여대, 서울대병원,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했어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넓은 연대로 투쟁해 나갈 거예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끝까지 함께 걸어가자고요.🚊🔥

‘푸른 뱀의 해’가 시작되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에서 활동하게 된 경화입니다. 여러분은 ‘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뱀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은 늘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로 여겨졌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귀엽게 그려진 뱀 캐릭터들이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뱀처럼 오랜 시간 혐오의 대상으로 핍박받은 캐릭터가 또 있습니다. 바로 ‘마녀’입니다.

작년 11월, ‘마녀’가 주인공인 영화가 개봉했어요. 이미 뮤지컬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작품, 영화 《위키드》입니다! 《위키드》는 1900년 출간된 L.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기반으로, 그레고리 매과이어가 1995년에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초록색 피부 때문에 차별받고 혐오 속에서 살아온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타고난 특권으로 ‘핵인싸’가 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우정을 그립니다. 두 사람은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뒤 ‘착한 마녀 글린다’와 ‘사악한 서쪽 마녀’로 나뉘게 되죠. 70년 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위키드》에는 차별과 낙인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독재 권력자인 ‘오즈의 마법사’뿐만 아니라, 엘파바와 글린다가 다니는 대학의 학생들 역시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다양한 인종과 젠더, 성적지향을 가진 학생들이지만, 유일하게 초록색 피부를 지닌 엘파바에게만 차별과 혐오를 숨기지 않습니다. 학교의 유일한 장애인인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제(마리사 보드) 역시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네사로제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언니 엘파바의 존재입니다.

엘파바가 가치 있는 인간으로 여겨지는 순간은 비범한 마법을 보여줄 때뿐입니다. 영화 내내 핍박받던 엘파바가 강력한 마법을 선보이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환호하는데요. 이때 우리는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엘파바에게 마법 능력조차 없었다면? 관객들은 그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참고로, 참으로 퀴어한 캐릭터인 엘파바가 결국 ‘왕자님’ 피예르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아쉽습니다. 꼭 사랑에 빠져야 했을까요?)

능력주의와 이성애 중심의 서사가 넘쳐나는 영화이지만, 여러분께 《위키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시설 사회’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말을 배우지 못하도록 시설(케이지)에 가두는 장면이 상징적입니다. 엘파바는 이 시설에 갇힌 동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죠.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자신 또한 시설 사회에 갇혀 살아왔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엘파바가 시설 사회에서 벗어나려 할 때, 글린다는 간절히 설득합니다.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으니 ‘오즈의 마법사’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고, 이곳에서 함께 꿈을 이루며 살자고요. 하지만 둘은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꿈을 이루려면 권력에 굴종하고 폭력에 눈 감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대가로 ‘안전’과 ‘안락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요.

“더는 남들이 정한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이젠 망설일 시간이 없어. 중력을 벗어나 저 높이 날아오를 거야. 누구도 날 끌어내릴 수 없어.” 엘파바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Defying Gravity〉의 가사입니다. 시설 사회와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나요? 아직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니, 꼭 음향 좋은 곳에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혹시 이미 보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저는 이 글을 마치고 애플TV로 한 번 더 보려 합니다. (참고로, 글린다 역의 아리아나 그란데의 희극 연기가 정말 훌륭하답니다!) 오랜 통념은 집어던지고, ‘푸른 뱀의 해’를 초록색 얼굴을 한 서쪽 마녀 이야기와 함께 힘차게 시작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