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고양이는 왕을 쳐다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영국 속담으로는 아랫사람도 윗사람 앞에서 무슨 말이든 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라 한다. 한번은 법정에서 앨리스의 몸이 커져 버린다. 옆에 있던 존재가 "넌 이런 곳에서 커질 권리가 없어"라고 하자 앨리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도 있잖아"라고 대꾸한다. 수현도 지역사회를 쳐다보며 마찬가지로 대꾸하고 싶다. 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를 쳐다볼 수 있고, 이곳에서 몸이 커지고 나이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 돌봄의 상상력 / 김영옥 류은숙

안국역 또는 혜화역의 어느 아침. 출구가 열리자 외침이 들려온다.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전장연 활동가, 지지하는 시민, 청년들이 그곳에 있다. 외침의 끝자락에는 지하철공사 관계자 또는 역장의 시위를 '만류'하는 안내방송이 이어진다.

몇 년 동안 명동으로 출근했다. 언젠가 4호선 명동역에 "승강장 리프트 고장으로 역 출구까지 휠체어 이용이 불가합니다. 휠체어 이동 고객은 다음 역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른 출구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역으로 가라니. 그것도 휠체어를 타고 한 정거장을 이동하라는 안내가 말이 되는 걸까.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한 안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한 안내문은 내가 명동으로 출근하는 5년 동안 계속 걸려 있었던 것 같다. 볼 때마다 ‘항의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작년의 그 이상했던 '윤석열의 비상계엄' 이후 많은 시민,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요즘 애들이란'이라며 혀를 찼던 어른들은 틀렸다. 왜 야광봉을 들었는지, 추운 걸 싫어한다면서도 겨울철 시위 현장을 찾는 이유를 차분하지만 진지하게 설명하는 젊은 그들. 모두가 "이제 나와서 미안하다", "알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글씨로만 알던 장애인 이동권, 일할 권리, 접근성, 생명 존중. 인권의 최전선은 장애인 운동이란 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역시 현장에는 답이 있었다. 김포장애인야학, 노들야학, *'대항로'를 알게 되면서 몇 년 전 명동에서 만났던 이상한 안내문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사용할 수 없는 키오스크, 문턱이 있는 편의점과 카페. 장애인 콜택시 시간에 약속을 맞추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 *대학로에 위치한 진보적 장애운동의 진지를 '대항로'라고 부릅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건강하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당연한 외침조차 구호가 되는 사회. 이상한 나라에서만 성장하고, 날아다니며 자유로울 수 있는 앨리스. 앨리스에게 몸이 커질 권리를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2월 20일 목요일, 2025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19차 정기총회가 국회의사당역 근처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진행됐어요. '정기총회'는 전장연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예요.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함께 결정하는 자리죠. 투쟁 방향을 논의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라 더 의미가 커요.

1부에서는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실내 총회를 진행했는데요. 투쟁 기조 평가부터 강령 개정 건까지 다양한 안건을 다뤘고, 2부에서는 야외 T4 철폐 농성장에서 전장연의 투쟁을 든든하게 함께해준 단체인 빈곤사회연대, 문탁네트워크, 고전비평공간 규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에 감사패를 전달했어요. 또, 임기를 마친 최용기, 양영희 상임공동대표님께도 감사패를 전하며 그동안의 헌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나눴답니다. 전장연의 투쟁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지지받고 있는지 해외 연대 단체들의 축사 영상을 함께 보며 확인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죠. 끝으로 200여 명이 깃발식을 진행하며 전국의 진보적 장애인 단체들이 2025년 더욱 강한 New Citizenship, Against Ableism(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투쟁을 결의! 😊 2025년, 전장연은 더 단단하게, 더 멀리 싸우겠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지하철에서 승강장으로 갑니다. 교통약자법의 지난 20여 년 역사를 담은 듯 쭈그러진 선전물을 휠체어 뒤에 주렁주렁 달고 열차 안으로 들어섭니다.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수단’으로 매일 이동하는 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쏟아지는 이목에 신경 쓰지 않으려 당신과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내뱉을 때도 있었습니다.

몸도 불편한데 왜 밖에 나왔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은 이들도 있었고, 험악한 욕설 세례를 받은 날도 부지기수입니다. 그것이 내가, 우리가 지하철에서 매일같이 겪는 특별하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침은 조금 특별한 이동길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이 많고요. 비장애인 20명이 한꺼번에 이동한다고 해서 서울 도심에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습니다. 몇천 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별다를 것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휠체어를 탄 20명이 한꺼번에 지하철을 타면 그것은 불법이 되는지요. 그리고 왜 그것은 누군가의 불편을 초래하는지요? 우리는 ‘시혜’와 ‘동정’을 권리로 삼아 매일을 이동합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생전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했던 자들이 누군가의 불편을 초래하는 자를 자처하려 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마이크를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권리를 내뱉어내는 날입니다.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권리 확보를 유예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예산의 논리 속에, 누군가의 생존을 향한 일상의 외침은 누락되어 있다고. 그러니 오늘은 여느 하루와 다르지 않지만, 조금은 특별한 출근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전장연에서의 4년 활동을 마치고 잠시 내려, 노들장애인야학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루의 시작, 그 아침을 함께 지켜줘서, 나 역시도 당신들 덕분에 그 시간들을 보내왔노라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 혜화역 승강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