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전장연과 함께했던 활동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어김없이 최옥란 열사 기일로부터 시작된 326장애인대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지하철 선전전, 탈시설 권리 보장 고공 농성... 꾸준히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몫으로 전장연의 시공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전장연과 함께했던 현장들에서 들었던 생각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전장연의 투쟁은 우리 사회의 기준을 옮겨야 함을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버스를 타자’라는 구호는 ‘우리가 탈 수 있는 버스로 바꿔라’라는 요구이기에, 버스의 물리적 구조와 운영체계를 바꾸는, 기준을 이동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사실, 저는 ‘이동권’을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자는 개념 정도로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다 10년쯤 전, 발목 인대가 끊어져 깁스와 목발에 의지하게 되면서 대중교통뿐 아니라 길거리, 활동 공간, 집 내부 등 모든 공간이 장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조그마한 단차, 기울기, 패임만으로도 발의 통증이 얼마나 심하던지요. 발 다친 환자에겐 온갖 시설물이 뜯어고쳐야 할 문제투성이었습니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전동 휠체어를 탄 승객을 버스 기사분이 승하차하도록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장비 조작이나 승객 응대 면에서 문제라 할 만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승객이 내린 후 기사는 낮게 한숨을 쉬며 ‘장애인 한 명 태웠다 차 다 붙었네’라 혼잣말로 푸념하였습니다. 배차 간격이 좁아져 낭패라는 뜻이었습니다. 여객 운수 노동자가 경쟁적 평가 체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이동권의 온전한 보장도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그렇게 요구해왔기에 이동권 역시 그렇게 확장해 가리라 믿습니다.

제게 중증장애인 권리중심일자리는 400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기 전부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도 노동’이라는 것을 주장의 차원을 넘어 제도적으로 확증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예술활동, 권리옹호활동,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그러한 활동에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맞섬과도 같았습니다. 이윤에 기여하지 않는 무산자들의 몸짓에 보상을 한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권리중심일자리는 임금 노동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사회는 물론 참여자 본인에게 유용한 신체·정신적 활동이라면 노동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게 공공일자리 정책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엄청난 전환으로 여겨졌습니다. 서울시의 ‘노숙인일자리’는 공공일자리지원, 민간일자리 연계로 이뤄집니다. 민간일자리는 목표 대비 성과가 크게 낮고, 취업한 일자리도 대부분 초단기 고용으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공공일자리는 늘 부족해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일답지 못하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일자리 참여자분들은 ‘그냥 돈 주기 뭐하니까 빗자루 들고 서 있게 한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서의, 존재의 투영으로서의 노동과는 거리가 먼 일자리입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갇힌 노동 관념이 불러온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리중심일자리의 원리를 ‘노숙인일자리’ 영역에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 동지가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올랐을 때, 가지런하게 쌓아 올린 성당 벽면과 그 위에 점잖게 쓰인 문구가 거슬렸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 하느님 내지 예수님이 좋은 뜻으로 한 말씀이겠지만, 그 순간 제가 보기엔 전제군주의 절대복종 요구처럼 읽혔습니다. 오늘 두 명의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들은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와 함께 원주복지원 입소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시설 직원의 폭행과 학대가 일어난 그곳에서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 대다수는 장애인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노숙인요양시설’입니다. ‘노숙인’이라 불리든 ‘장애인’이라 불리든 수용시설이 있는 한, 그곳은 집이 없어서든 돌봄이 없어서든 지역사회에서 뿌리 뽑힌 이들로 채워집니다. 작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요양시설 입소인의 64.4%가 등록장애인이며, 입소인의 60.1%는 10년 이상 장기입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성의 장기입소 비율은 무려 83.7%에 이릅니다. 흔히들 생활 시설은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준비 전략이라 설명합니다. 물론, 일부 솔직한 성직자들은 사회적 문제자들을 신심으로 돌본다며 수용시설임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0년 이상 공들인 준비 전략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모델이 틀린 것 아닐까요? 시설이 신앙도 아니고 폐기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시설 생활은 오히려 ‘독립생활기술’과 ‘지역사회통합 역량’을 퇴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꽃’동네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살아야 합니다. 장애인이든 홈리스든 빈자든 부자든 그래야 합니다. 시설이 집일 수 없는 것은 감옥이 징벌인 이유와 같습니다.

전장연의 탈시설 투쟁에 연대하며 모두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세계로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의 활동에 큰 담력과 참고, 그리고 가끔 이른 아침까지 선물하는 전장연의 투쟁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투쟁! 😊

안녕하세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 혜인입니다.

무대 위 스크린이 켜지자, 서로 다른 몸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누군가는 수어를 따라가고, 누군가는 음성 해설을 통해 장면을 이해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막 해설을 따라갑니다. 다르게 감각하면서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함께 살아냅니다. 이것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만들어온 자리입니다.

저항의 스크린이 밝히는 광장에서는 누구나 같은 위치에서 영화를 봅니다. 좌석의 높낮이도, 등급의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장애인의 다채로운 삶이 담긴 빛과 마주합니다.

그러나 영화제는 늘 쉽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예산이 끊기기도 하고, 공간을 찾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반드시 영화제가 여러분과 만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후원자와 관객에게 “영화로운 연대”를 말합니다. 영화롭다는 것은 빛나고 존귀한 순간을 뜻합니다. 연대가 모여 빛나는 장면을 만들고, 그 순간이 다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도 영화로운 연대와 영화로운 순간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투쟁, 투쟁.🔥